한 인권 단체가 낸 보고서에는 밤중에 군인들이 찾아와 한 시민을 데려갔다는 증언이 여러 건 담겨 있었다.
그는 이후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는 공식 체포 사실을 부인했고 병원·교도소·경찰기록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이처럼 '존재가 부정되는 상태'는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정보기관이 피의자를 특정 장소에 장기간 구금하며
정식 재판 없이 조사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이뤄졌다는 진술이 이어졌다.
이처럼 비밀리에 결과는 사라진 채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은 국가가 자행하는 가장 조용한 폭력이다.
고문과 강제실종이 국제법의 테이블에 올라오게 된 과정
고문 금지에 대한 논의는 군사 독재 정권이 많았던 냉전기부터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피의자 또는 정치적 반대자를 불법 구금하거나
비공식적인 취조를 행한 사례들이 세계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에 따라 1984년 채택된 유엔 고문방지협약(CAT)은 고문을 절대적으로 금지해야 할 행위로 명시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를 두지 않으며 군사적 긴급 상황이나 국가 비상조치도 정당화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강제실종 역시 단순히 사람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존재를 부정하며 법적 접근을 막는 행위로 정의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강제실종방지협약(ICPPED)이 만들어졌다.
두 협약 모두 "국가가 적극 개입하지 않더라도 방조하거나 묵인했다면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국제 기준은 있지만 실제 판별은 사례마다 경계를 넘나 든다
법적 문서에서는 ‘고문’이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그 경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장시간 구금, 식사 제한, 조명 노출, 반복적인 심문 등은 단독으로 보면 애매하지만
전체 맥락 속에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한 경우 고문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강제실종도 마찬가지다.
공식 문서에 체포 기록이 없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접견이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그 자체로 실종이 아니라 '은폐된 구금'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국제인권기구나 유엔 산하 위원회는 이러한 사건을 다룰 때 행위의 고의성, 반복성, 피해자 보호 조치의 유무, 국가기관의 개입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결국 고문과 강제실종은 개별 행위라기보다 전체 시스템이 침묵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접근된다.
‘국가 책임’과 ‘개인 책임’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법적 대응의 방향
고문이 발생했다는 제보가 접수됐을 때 처음 반응하는 건 보통 피해자의 가족이거나 현지 인권단체다.
이후 정부가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사에 착수하지 않거나 오히려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국제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국가 전체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임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누가 그 구조를 알고 있었고 어떤 대응을 하지 않았는지를 파악하려 한다.
조직 내부에서 고문이나 강제실종이 일어났다면 국가는 예방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에서 비판을 받게 되고 실제로 개입한 개별 인물은 그 행위로 인해 국제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한 사건 안에서도 국가의 의무와 개인의 처벌 책임은 각각 별도로 분석된다.
조직의 방치와 개인의 행위가 겹칠수록 법의 접근은 더 정밀해진다.
피해자는 기억하고 있지만 기록되지 않으면 책임은 사라진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사건의 날짜와 장소 어떤 방식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지만 공식 문서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이런 경우 국제기구에 사건을 접수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응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국가 내부에 해결 통로가 없다면 유엔 인권이사회, 고문방지위원회, 강제실종 실무그룹 등이 사건을 접수받아 조사 권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조차 피해자가 먼저 나서야 시작되며 피해자가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면 문제 제기 자체가 어려워진다.
결국 고문과 강제실종을 막기 위한 국제법은 단지 조약의 존재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려는 사람, 기억하는 가족 그리고 침묵을 해석할 수 있는 절차가 함께 있어야 실질적인 보호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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