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외 투자자가 개발도상국 정부와 체결한 계약서를 읽고 있었다.
문서 안에는 건설 기간, 투자 금액, 분쟁 발생 시 절차 등이 포함돼 있었고 맨 끝에는 작은 글씨로 중재기관과 준거법에 대한 문장이 들어 있었다.
몇 년 뒤, 정권이 바뀌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정부는 자국의 경제 위기를 이유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고 투자자는 약속된 조항에 따라 국제중재를 요청했다.
그 중재 과정에서 쟁점이 된 건 계약 조항보다 그 문서가 어떤 ‘법의 틀’ 안에 있었는지였다.
표현은 행정 계약 같았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외부 규범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사례는 국가가 체결한 계약이 국내 행정 처리로 끝나지 않고 국제 분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가가 서명한 계약이라 해도, 모든 문서가 국제법 대상은 아니다
국가 간 계약이라고 해도 그 문서가 자동으로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건 아니다.
실제로는 문서의 성격, 계약 주체의 지위, 그리고 무엇보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의 대응 절차가 핵심이다.
어떤 나라는 국가기관이 체결한 계약을 국내 민법이나 행정법을 기준으로 해석하려 한다.
반면 외국 투자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국제중재 조항을 근거로 국제법적 권리 보호를 주장한다.
이 갈등은 단순히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이 관여할 수 있는 경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분쟁으로 번진다.
한 중재 사례에서는 계약서에 명시된 준거법이 국가 내 민법이었음에도 중재 판정부가 “계약 체결과 해지 방식이 투자협정 위반”이라며 국제법 위반을 인정한 적도 있었다.
투자 협정이 계약 해석에 영향을 준 경우
남미의 한 국가가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해외 에너지 회사와 체결한 계약이 있다.
계약에는 사업 기간 동안 정부의 규제 변동이 있더라도 기존 약속은 보장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해당 정부는 에너지 요금 상한제를 도입했고 사업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기업은 이 조치를 계약 위반으로 간주했고 투자 보호협정에 따라 국제중재를 청구했다.
중재 판정부는 계약 내용만 본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가 체결한 양자 간 투자협정에 따라 기업이 “합리적 기대”를 가질 수 있었는지 여부를 따졌다.
그 결과 계약 위반 여부는 국제계약의 해석을 넘어 국가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 사례처럼 계약 자체보다 그 계약이 체결된 배경과 적용된 국제 조약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계약에 적힌 문장 하나가 법적 책임 구조를 바꿨던 사건
중동의 한 통신 인프라 사업에서도 비슷한 쟁점이 발생한 바 있다.
해당 국가는 외국 기업과 대규모 통신망 구축 계약을 맺었고 계약서 말미에 ‘중재지는 제네바, 준거법은 국제법’이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이후 사업 중단이 발생했고 정부는 보안상 이유로 계약을 일방 해지했다.
기업 측은 즉시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중재 신청을 했고 해당 문장의 유효성을 쟁점으로 삼았다.
정부 측은 이 조항이 “일반적 문구일 뿐 실제 계약 이행은 자국 법률에 따라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재 판정부는 해당 문장이 명시된 이상 당사국이 그 조항에 따라 국제법적 책임도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계약에 쓰인 단 몇 줄이 국가가 ‘주권 행위’라 여겼던 결정을 국제법상 위반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문서보다 그 문서를 둘러싼 대응이 기준을 만든다
처음 계약이 체결될 당시에는 이 문서가 국내 행정 기준에서 관리될 거라고 예상한 쪽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분쟁이 생기자 당사자들이 서로 전혀 다른 해결 통로를 선택했다.
정부는 자국의 법률과 헌법에 근거해 자국 내 문제로 처리하려 했고 기업은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따라 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넘겼다.
그 차이에서 문제가 시작됐다.
계약에 적혀 있던 중재지, 준거법, 분쟁 절차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문서 전체의 해석 방향을 바꾸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시 계약의 표현보다 그 계약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절차를 유도했는지가 국제법 적용 여부에 더 강한 영향을 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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