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전 세계가 동의한 ‘기후변화 협약’은 법일까 약속일까?

Useful notes by Alice 2025. 7. 7. 13:12

기후변화 회의장에서 채택된 문서들은 종종 단어 몇 개 차이로 수일간 조율이 이어진다.
한 나라의 협상 대표는 “노력한다”는 표현에 집착했고 다른 한쪽은 “이행한다”는 표현을 고집했다.

그 단어들이 문서에 담겼다고 해서 당장 무언가가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달 뒤  어떤 정부는 그 조항을 근거로 예산을 조정했고 어떤 곳은 이행 보고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명이 이루어진 날보다 중요한 건 그 이후의 내부 움직임이었다.
어떤 국가는 협약을 제도에 반영했고 어떤 국가는 일정만 제출하고 멈췄다.
문서가 법이 되었는지 여부는 그 나라 안에서 벌어진 행동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협약은 국제법일까 그저 약속일까

 

서명한 종이가 법이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가

협약 초안에 서명한 나라들은 각기 다른 국내 절차를 밟았다.
어떤 곳은 의회 승인을 거쳐 비준했고 다른 곳은 대통령령으로 처리했다.

그 차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차이가 아니었다.
비준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유보되거나 국내법과 충돌하는 부분이 조정되기도 했다.
즉, 협약의 원문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또 어떤 국가는 협약 내용을 ‘정책 지침’으로만 활용했고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규제로는 연결하지 않았다.
감축 목표는 설정되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책임은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기후협약은 단일한 법의 형태로 작동하지 않았다.
각국이 같은 문서에 서명했어도 그 효과는 현장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어떤 정부는 법으로 만들고 어떤 정부는 만들지 않았다

같은 협약이었지만 실행 방식은 지역마다 극명하게 갈렸다.

어느 국가는 감축 수치를 그대로 법률 조항에 옮겼다.
환경 관련 법을 개정해 배출량 상한을 명시했고 사업장은 해당 기준을 초과할 경우 행정조치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은 정치적 논쟁 없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서가 법률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협약에 담긴 내용을 정부 보고서 수준에서만 다루는 곳도 있었다.
감축 계획은 수립됐지만 강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실행 여부는 행정부의 재량에 따라 달라졌고 법령으로 구속하는 조치는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어떤 국가는 협약을 제도로 만들었고 다른 국가는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서명은 동일했지만, 실천의 구조는 동일하지 않았다.

 

협약을 지키지 않은 국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어느 국가도 파리협정을 어겼다고 국제형사재판소에 불려 간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정기적인 이행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거나 감축 수치가 현저히 부족했던 국가는
국제회의나 언론 보도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압박을 받았다.

일부 국가는 이 과정에서 투자 유치에 불이익을 받았고 외교적으로도 고립감을 느낀다고 평가했다.
결국 협약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은 없지만 그 영향은 ‘법’이 아니라 관계 구조 안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협약이 법이 된 것이 아니라 법이 협약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협약 문구가 그대로 법이 된 경우는 드물지만 그 내용을 기초로 삼아
국내 규제가 새롭게 구성된 사례는 늘어나는 중이다.

예를 들어  감축 목표가 정부 예산 심의에서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고
부처별 에너지 사업이 재조정되기도 했다.

또 어떤 국가에선 시민단체가 정부의 조치를 문제 삼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기후 대응의 미흡함을 지적한 판결이 나왔다.
그 판결 이후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

이 모든 변화는 협약 조문을 고치지 않아도 충분히 발생했다.
문서를 만든 쪽이 아니라 그 문서를 해석한 쪽이 움직이면서 기후협약은 점차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