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말은 평소엔 익숙하지만, 막상 “무엇이 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히는 개념이다. 어릴 때는 지도에 표시된 곳이 국가라고 생각했다. 국기와 수도, 언어가 있다면 나라라고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지도에 없는 나라도 있고, 이름이 있어도 국제사회에선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었다.
이 간극이 너무 커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그때부터였다. 국가라는 것이 단순히 경계와 제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자격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 건.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
몇 해 전,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지역의 이야기를 봤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국기를 만들고,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선거를 치렀다. 거리에는 포스터가 붙었고, 교과서가 인쇄됐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배웠고, 어른들은 매일 그 나라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모든 체계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불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공식적으로 그들과 외교를 하지 않았고, 유엔에도 가입되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오래 생각에 잠겼다. 왜 누군가는 그렇게 분명하게 ‘존재’하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물리적으로 거기에 있는 공동체는 실제였지만, 세계는 그들에게 ‘국가’라는 이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국가라는 것이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 확인되어야만 작동하는 구조라는 걸 느꼈다. 나라는 나 혼자 만들 수 없었다. 그게 공동체든 정부든, 어떤 정치적 실체든 간에 ‘외부의 응답’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사는 이 구조는 마치 문 앞에서 허락을 받아야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과도 비슷했다.
조건이 아니라 시선이 만든다
어느 국제법 수업에서, 교수님이 “국가가 되기 위한 요건은 딱 정해진 게 있다”고 말했다. 나와 동기들은 그 기준을 외우려 들었다. 사람, 땅, 정부, 외교. 그렇게 외운 기준은 시험 문제에는 유용했지만, 뉴스에서 만나는 현실 속 ‘국가 아닌 국가들’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 기준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반대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듯해도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건보다 ‘누가 인정하고 있느냐’라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친구는 “국가는 자격이 아니라 관계”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남았다. 국가로 인정받는다는 건, 결국 다른 국가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느냐의 문제였다. 누구와 말이 통하고, 누구와 협약을 맺고, 누구에게 ‘존재한다’고 받아들여졌는지가 핵심이었다.
나는 이걸 인간관계에 빗대어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자기 자신을 정리해 놓아도,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는 아마도, 그런 식으로 세계와 연결되어야만 진짜 이름을 가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인정받기 위한 말 걸기
세계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싶다는 움직임도 곳곳에 있다. 하지만 그 꿈은 대부분 정치적 논리와 외교적 셈법 속에서 길을 잃는다. 자신들이 나라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제사회는 응답하지 않는다. 응답이 없는 곳에서는 약속도, 책임도, 외교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건 국가라는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으로부터 파생되는 보호와 역할, 존중과 연결이다. 어떤 공동체가 자신들을 나라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먼저 세계의 귀에 그 목소리가 닿아야 한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세계가, 그들에게 말을 걸 때부터 비로소 관계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국가’는 점점 더 실체로 굳어간다.
내가 국제법을 공부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법’이라는 것이 자격이 아니라 관계의 틀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름을 붙이는 것도,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앞서는 건 “우리는 너를 나라로 받아들인다”는 세계의 응답이다. 그 응답이 없으면, 그 나라는 현실 속에서 쉽게 흔들린다. 지도 위에 그려졌더라도, 마음속 세계지도에선 여전히 빈 공간일 수 있다.
국가는 누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들어주고 응답해 줄 때 완성되는 개념이다. 존재와 인정 사이, 그 보이지 않는 간극 속에서 국가는 점점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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