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갈래로 나뉘어 있다. 특히 국내법과 국제법은 겉으로 보기엔 모두 ‘법’이지만, 작동 방식이나 존재 이유는 상당히 다르다. 둘 다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사회의 구조가 ‘하나의 국가 내부냐’ 아니면 ‘국가들 사이냐’에 따라 법의 성격도 전혀 달라진다. 나는 이 차이를 제대로 실감한 순간, 우리가 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법, 옆에서 옆으로 합의하는 법
한국에서 길을 걷다 무단횡단을 하면 교통법 위반이다. 경찰이 제지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국내법은 국가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위임형 법’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법의 적용 대상이고, 그 법은 정부라는 집행 기관에 의해 관리된다. 여기에 대한 동의나 거부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법 안에서 살아간다.
반면 국제법은 ‘누구의 위에서’ 내려오는 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수평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합의의 법’에 가깝다. 두 나라 이상이 모여서, 서로의 이익과 입장을 고려해, 일정한 원칙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움직이기로 약속하는 구조다. 강제력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법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국제 사회에는 하나의 경찰도, 하나의 법원도 없다. 강한 나라든 약한 나라든, 자국의 의지 없이 법이 적용되는 구조는 불가능하다. 그런 맥락에서 국제법은 ‘합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차이를 처음 실감했던 경험이 있다. 대학 시절 모의 국제회의에 참가했을 때, 각국 대표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이 조약 문구 하나를 두고 몇 시간씩 토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강하게 주장하던 나라도, 누군가 반대하면 물러나야 했다. 결국 가장 약한 합의에 모든 나라가 수긍하면서 조약 초안이 결정됐다. 이 과정을 보며 느꼈다. 국내법은 누군가의 결단으로 내려오는 반면, 국제법은 누구도 상처 입지 않게 조율하는 인내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국경 안에서는 통제, 국경 밖에서는 조정
국내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권리와 의무를 분명히 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시스템은 안정적이고 명확하다. 도로에서 신호를 어긴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 상속을 할 때는 민법을 따른다. 누구든 법률을 어기면 법원이 판단을 내리고, 국가가 집행한다. 법이 있어야만 사회가 돌아간다는 말은, 국내법 체계에서는 실제로 아주 설득력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국제법의 세계는 훨씬 복잡하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어선을 나포했다고 가정해 보자. 상대국은 주권 침해를 주장하고, 원래 국가는 자국 영해에서의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이때 어느 한쪽의 말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 국제법은 이럴 때 사실과 해석, 그리고 합의의 가능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종종 중재기구가 개입하고, 때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판결조차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국가들의 정치적 의지가 그 법의 실효성을 좌우한다.
내가 국제뉴스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국제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적용되기까지 너무 많은 절차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도 그렇다. 법의 규정은 있지만, 적용은 언제나 힘과 외교, 타이밍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래서 국제법은 종종 실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세계에서도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게 만드는 구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법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기대하는 법의 역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결국 법은 관계를 위한 틀이다. 국내법은 시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책임진다. 우리는 이 법 아래에서 살아가며,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이 생기면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반면 국제법은 독립된 주체들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프레임이다. 그것은 더디고, 느리며, 때로는 모호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존중하려는 최소한의 공감과 배려가 들어 있다.
나는 이 두 법의 구조를 비교하면서 ‘내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되묻게 되었다. 명확한 통제를 통해 안정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타협과 공존을 이룰 것인가. 그리고 이 고민은 비단 법의 체계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 자체와도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국내법과 국제법은 결국 적용 범위가 다르고, 운영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장치라는 점이다. 법은 단지 제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조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법은 사회를 지키는 장치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국내법이 다소 명확하고 빠르다면, 국제법은 유연하고 느리다. 그러나 그 속에는 더 넓은 관계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두 법을 비교하고 이해하는 것은 단지 지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출발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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