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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디지털 검열, 국제인권법 위반으로 볼 수 있을까?

인터넷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겉보기엔 자유롭다.
하지만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가에 따라 게시물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룬 주제에 따라 계정이 정지되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디지털 공간은 기술적으로 국경을 넘지만 그 안에서 허용되는 표현의 기준은 여전히 각국의 정책과 규제 안에 갇혀 있다.
국가마다 다르게 정해진 ‘민감한 표현’의 기준이 플랫폼 운영 방식에 영향을 주고 결국 사용자는 자기가 속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규정에 따라 콘텐츠 제약을 겪는 상황도 발생한다.
검열이라는 개념은 과거에는 출판과 방송처럼 전통적인 미디어 영역에서 주로 거론됐지만 지금은 추천 알고리즘, 자동 필터링, 해시태그 차단처럼 훨씬 더 정교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플랫폼이 말하지 않아도 사용자는 자꾸 말하기를 멈추게 된다.
그런 현실 속에서 국제인권법은 침묵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 이상 일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 전체가 고민해야 할 공통된 화두가 되고 있다.

 

 

국제 인권 법에서 디지털 검열은 위반사항일까

 

 

자유라고 말할 수 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여겨져 왔고 국제인권법에서도 이를 핵심 권리로 규정해 왔다.
하지만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현실은 너무 복잡하다.
각국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제한할 수 있는 조건들을 법률 안에 명시하고 있다.
공공질서 유지, 국가 안보 보호, 타인의 권리 존중이라는 이유는 그 제한의 대표적인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문제는 이 같은 제한이 때로는 진짜 위협을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 비판이나 사회적 반대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정 표현이 ‘불편한’ 이유만으로 제한되는 일이 반복되면 그 사회에선 점점 더 말하기보단 침묵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법의 존재는 분명하지만 그 법이 실제로 누구를 위해 작동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국제인권법은 분명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해석과 집행은 여전히 국가의 자율적 판단에 크게 의존한다.
결국 어떤 나라는 표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사용하고 어떤 나라는 표현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법을 활용한다.

 

검열은 기술보다 그 기술을 쓰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시대의 검열은 과거처럼 명시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댓글을 지우거나 기사를 차단하는 일은 오히려 가장 단순한 사례에 속한다.
요즘의 검열은 훨씬 더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게시물이 누군가의 피드에 도달하지 않게 되거나,
특정 검색어에 해당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방식도 대표적이다.
이는 기술적으로 정교한 ‘보이지 않는 검열’로 사용자 스스로 자신의 콘텐츠가 차단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기 어려운 구조다.
그런 방식은 운영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의도로 어떤 콘텐츠가 걸러졌는지에 대한 투명성은 부족하다.
플랫폼은 자신들의 알고리즘이 중립적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주제나 입장을 더 부각하거나 상대적으로 감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운영하는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공정하지 않다면 아무리 자동화된 시스템이라 해도 검열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원칙은 존재하지만 그 원칙이 힘을 가지진 못한다

국제인권법은 국가의 행동에 일종의 기준선을 제시하려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실제 법적 강제력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검열이 문제 될 때마다 국제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성명을 내놓지만 그것만으로 조치를 되돌리긴 어렵다.
결국 원칙은 반복되지만 그 원칙을 따르지 않아도 처벌은 따르지 않는다.
이 간극은 국제법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통제와 자유 사이 법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검열은 언제나 이유를 가지고 등장한다.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든 허위 정보를 줄이기 위해서든 명분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명분 아래에서 표현의 다양성과 반대 의견까지 지워진다면 그건 통제가 아니라 억압이 된다.
국제인권법은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진 않지만 그 제한이 합리적이고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법은 완벽한 방패가 아닐지라도 표현이 사라진 자리에서 책임을 묻는 기준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