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국제형사재판소는 전범에게 어떤 법을 적용하는가

Useful notes by Alice 2025. 7. 2. 18:44

전쟁은 총성이 멈추고 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는 남고, 기억은 지속되며, 책임을 묻는 과정은 오히려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나는 어느 기록에서 그런 문장을 읽었다.
“전쟁을 끝내는 건 무기가 아니라 문장이다.”
그 문장이 가리키는 장소는 법정이었다.
전쟁 중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그 일에 이름을 붙이며, 그 이름에 따라 책임을 묻는 곳.
그곳은 다름 아닌 국제형사재판소였다

 

전범에게 적용되는 국제법

 

말해진 일이 모두 법이 되는 건 아니다

전쟁이 끝난 뒤 가장 먼저 요구되는 건 진상 규명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사람마다 다르고, 기록은 흩어져 있으며, 그중 어떤 건 의도적으로 감춰져 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증거’를 바탕으로 최대한 분명한 문장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나는 법정에 선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진술해야 했고, 그 말의 정확성을 끊임없이 확인당했다.
증언은 반복됐고, 그 안에서 법은 ‘사실’이 아니라 ‘입증된 사실’만을 다루려는 구조를 선택했다.

이 점이 국제형사재판소의 특징 중 하나라고 느꼈다.
모든 고통이 다뤄지지는 않지만,
법이 닿을 수 있는 고통에 대해서만 정확한 문장을 쓰려는 태도.
그 태도는 때로는 차갑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냉정함이 없으면 판결은 설득력을 잃는다.

 

책임이 묻히지 않도록 법은 구조를 만든다

전범이라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법적 책임의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의 행위가 조직의 일부인지, 의도된 것인지, 명령에 따른 것인지, 이 모든 요소가 함께 판단된다.

법은 단지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전 과정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반복되거나 패턴화 된 요소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흐름 안에서 개인의 선택이 어디까지였는지를 분리해 낸다.

이 구조는 감정적 분노보다는 행위의 구조화에 가깝다.
그래서 이 법정에선 누가 나쁘냐를 묻기보다, 누가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묻는다.

나는 이런 방식이, 전쟁의 잔혹함을 다시 감정적으로 폭발시키지 않고,
냉정하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느꼈다.
이 시도는 완벽하진 않지만, 책임을 단순히 도의적 차원이 아니라 법적 기준 안에서 재구성할 수 있게 만든다.

 

법이 머무는 자리에 미래가 다시 시작된다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아프고, 공동체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판결이 새 출발점이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장의 판결문은 그 기억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이 장면에서 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다시 보게 된다.
그것은 단지 사람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세계에 남기는 절차였다.

그리고 그 절차를 거치며 이전에는 외면당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이야기로 바뀐다.

전범이라는 단어는 분노를 담고 있지만, 그 단어를 다루는 법의 방식은 감정이 아닌 구조로 접근하려는 태도였다.
그 태도는 종종 느리지만, 한 번 시작되면 쉽게 뒤로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한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에게 책임을 묻고 질서를 되찾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