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협상이 최종 결단의 기로에 섰다.
8월 1일부터 발효될 예정인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 정부는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막판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협상은 단순한 관세율 조정이 아닌, 한국의 대미 투자 전략, 국가 산업 경쟁력 그리고 무역외교 역량이 총체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중대한 고비다.
한미 상호관세 협상의 배경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체제에서 구축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통상 정책을 바탕으로 동맹국에 대한 상호관세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반도체 같은 전략 산업 분야에서 미국 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삼고 관세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한국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상당수 품목에서 무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불공정한 무역"이라 규정하며 새로운 협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번 협상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패키지 협상’인 셈이다.
미국의 요구: 4000억 달러 대미 투자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투자 규모는 4000억 달러(약 552조 원)에 달한다. 이
는 한국 전체 정부 예산의 86%에 해당하는 규모로 사실상 전례 없는 ‘올인 요구’다.
일본은 5500억 달러, 유럽연합은 6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바 있어 미국은 이를 기준으로 한국에도 유사한 수준의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한국 협상단에 “최선의, 최종적인 안(The Best and Final Offer)을 가져오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상징적 압박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응 전략: 2000억 달러+α의 투자 카드
이에 맞서 한국은 2000억 달러+α 규모의 투자 안을 제시했다. 이는 협상 초기 제안한 1000억 달러 안에서 두 배 이상 증액된 수치로, 구윤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협상단이 총출동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투자 안에 단순 현금 투자 외에도 다음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포함시켰다:
- 현대차의 기존 210억 달러 투자
-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투자 23억 달러
- 정책금융(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을 통한 간접지원
- 클라우드·디지털서비스 시장 개방 효과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트럼프식 계산법에 맞춘 것으로 실질적 투자가 아닌 '경제 효과'까지 포함해 간접적 투자 가치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주요 산업별 협상 쟁점: 자동차, 조선, 반도체
이번 협상의 중심에는 한국의 핵심 수출 산업인 자동차, 조선 그리고 반도체가 놓여 있다.
자동차 관세 협상
한국의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 비중은 무려 27%에 이른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각각 약 20%의 비중을 차지하며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은 일본과 EU와는 15%의 상호관세로 타협을 봤지만 한국에는 25%의 상호관세를 적용하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자동차 품목별 관세를 12.5% 수준으로 낮추는 안을 제시하며 협상 여지를 넓히고자 노력 중이다.
조선업 협력: MASGA 프로젝트
한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인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를 활용하고 있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미국 해군 및 연방 정부 발주 선박의 우선 건조 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협력안을 제시한 것이다.
반도체·2차 전지·바이오 분야
한국은 반도체, 2차 전지, 바이오 등 미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산업에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제안을 했다.
특히 반도체는 미국이 향후 15%의 관세 도입을 예고한 상태이며 한국은 이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미 통상협상에서 드러난 트럼프식 협상의 본질
한미 통상협상의 막판 국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트럼프식 협상’의 속성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체결 당시부터 관세와 무역 장벽을 활용해 상대국의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협상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번에도 동일하다. 그는 한국 정부의 제안에 대해 “충분하지 않다”며 끝까지 압박을 유지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행동하고 있으며 “싱크 빅(Think Big)”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대규모 대미 투자 없이는 관세 인하가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전략은 단순한 무역 적자 해소를 넘어 전략 산업의 미국 내 육성을 목표로 한다.
때문에 한국이 단순히 투자금액만 제시한다고 해서 협상이 쉽게 타결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한미 통상협상은 경제뿐 아니라 외교, 안보까지 포괄한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의 협상 전략 평가: 타당성과 한계
한국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원칙 하에 협상에 임하고 있으며 감내 가능한 수준에서의 상호 호혜적 결과 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세협상과 관련해 세 가지 원칙을 발표했다:
- 국익 최우선
- 감당 가능한 부담
- 상호 호혜적 성과 도출
이는 단순히 협상을 타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이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가지 한계점도 존재한다. 미국은 아직까지 철강, 알루미늄 관세 완화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쌀과 쇠고기 같은 민감한 농축산물 분야 개방을 최후의 카드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정치적 반발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또한 한국의 디지털 시장 개방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클라우드, 지도, 검색 등 민감한 디지털 데이터가 외국 기업에 개방될 경우 국내 플랫폼 산업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관세 협상이 실패할 경우의 시나리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협상 결렬로 인한 상호관세 25% 전면 발효다.
이는 단순히 한국 수출업체의 가격 경쟁력 약화를 넘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관세 인상에 가장 민감한 분야는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시장의 비중이 큰 만큼 현대차, 기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이미 2분기에만 관세로 인해 약 1.6조 원의 영업이익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역시 미국의 새로운 품목별 관세가 적용되면 수출 환경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
마무리하며
한미 통상협상은 단순한 투자 논의가 아니라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국 경제의 전략적 입지 확보에 중요한 전환점이다.
한국은 이번 협상을 통해 미국 내 관세 인상 유예 및 철회, 전략 산업 분야(자동차, 반도체, 조선, 2차 전지)의 안정적인 수출 기반 확보, 미국과의 경제 협력 강화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같은 핵심 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익을 수호하려 하고 있으며 관세 폭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마지막 카드들이 조율되고 있다. 이번 협상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 이는 앞으로 한국이 세계 무역 질서에서 어떤 위치에 설 것인지 결정짓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뉴스와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럼프 “한국과 무역협정 타결”…美에 4500억달러 투자 약속, 숨겨진 속내는? (0) | 2025.07.31 |
---|---|
“8월부터 진짜 더위 시작”…폭염 경보 속 온열 질환 폭증,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여름 생존법! (2) | 2025.07.31 |
미국, 한국에 “최종 무역협상안 내놓으라” 압박…상호관세 D-3 긴장 고조 (1) | 2025.07.30 |
이재용 방미와 한미 관세 협상, 삼성의 전략과 한국 경제의 향방 (1) | 2025.07.29 |
한국 패싱, 관세폭탄 임박? 산업계 '비상' (1) | 2025.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