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재가 민간 기업에 미치는 국제법 적 영향
제재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면 대부분은 외교 문제나 안보 이슈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먼저 반응하는 곳은 민간 영역이다.
거래가 끊기고 송금이 지연되며 계약이 무효화될 가능성도 생긴다.
정부가 내린 결정이지만 피해는 회사의 재무제표에 기록된다.
손해를 본 기업은 항의할 수 없고 거래처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의문이 생긴다.
‘이건 누구의 책임인가?’ 그 질문은 결국 법으로 향하게 된다.
제재 대상이 아니어도 피해는 따라온다
어떤 회사도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 기업이나 거래처가 제재 명단에 포함되기만 해도 기존 계약은 즉시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국제 송금이 막히고 원자재 수입이 중단되며 이미 지불한 대금조차 회수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그 모든 변화는 법적 조치를 예고하지 않은 채 현실로 다가온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안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특정 부품 하나가 제재 지역에서 오지 못하게 되면 전체 제품 생산이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재는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어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법적으로 ‘제 3자 효과’라 불리는 이 구조는 기업 입장에서 매우 애매하고 복잡한 대응을 요구한다.
계약은 살아있지만 이행은 불가능해지는 순간
계약이 있다고 해도 제재로 인해 상대방이 의무를 다할 수 없는 경우 실제로 계약이 이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걸 단순한 불이행으로 봐야 할지 불가항력으로 간주해야 할지는 분쟁마다 판단이 갈린다.
일부 국제거래 계약서는 제재를 포함한 ‘법적 제한’을 불가항력 사유로 명시한다.
하지만 문구의 해석은 계약 당사자의 국적이나 관할 법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제재를 부과한 국가의 기업은 계약 해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처럼 제재 상황은 단순한 거래 중단이 아니라 법적 해석과 권리 충돌을 동시에 발생시킨다.
법적으로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존재하며 그 결과는 개별 계약의 조건과 관할 국가의 법률에 따라 달라진다.
문서에는 멀쩡한데 움직이지 않는 거래
은행이 제재 문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한 발짝 물러난다.
상대 기업의 국적이 바뀌었거나 그 기업이 들여오는 자재가 특정 지역에서 출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계는 시작된다.
기업은 설명을 들을 수 없다. 보증서 발급이 미뤄졌다는 알림이 오지만 왜 미뤄졌는지는 안내되지 않는다.
절차상 문제가 없는데도 금융 거래는 뒤로 밀리고 계약 이행은 시일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보험사도 조용히 빠진다. 명시적인 거절 대신 조건을 하나 추가하고 보장 범위를 축소하며 부담을 떠넘긴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모든 선택은 ‘리스크 관리 차원’이었다는 말로 정리된다.
어떤 공식도 어기지 않았고 어떤 문서에도 불이행이란 표현은 없다.
그런데도 기업은 물건을 보내지 못하고 대금은 확보되지 않는다.
거래의 끝이 닫힌 것도 아닌데 어디선가 멈춘 상태가 지속된다.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국가가 지고 어디서부터는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가
기업이 제재로 인해 손해를 봤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재를 내린 쪽은 국가지만 실제 피해는 민간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거나 투자자국과 수용국 간의 투자보장협정(ISDS)을 통해 분쟁 절차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절차는 길고 복잡하며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
국제법상 국가가 제재로 인해 타국 기업에 피해를 줬다면 일정 부분 책임이 인정될 수 있지만 ‘공공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 그 면책이 가능하다. 결국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계는 고정돼 있지 않다.
이처럼 제재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지만 그 영향에 대한 책임은 쉽게 나뉘지 않는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법은 항상 그 원인을 되짚지만 그 해결은 언제나 정치와 외교를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