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조작과 국제 무역 법, 국가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숫자지만 어떤 날은 그 숫자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외환시장에 관심 없는 사람조차도 뉴스 헤드라인에서 환율이 급락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의미를 찾아본다.
누구도 직접 손을 댔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흐름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면 의심은 시작된다.
중요한 건 수치 자체가 아니라 그 수치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이 고의성이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책임으로 향하게 된다.
움직인 건 숫자지만 움직이게 만든 건 국가
환율이라는 건 여러 요인에 따라 자연스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흐름이 일정하고 움직임이 반복되면 시장의 힘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특정 국가가 외환시장에 반복적으로 개입하거나 수출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조정이 감지된다면 그건 단순한 경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개입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행동의 패턴은 점점 드러난다.
중앙은행이 갑작스럽게 외화를 사들이고 금리 정책이 시점마다 방향을 바꾼다면 그 뒷배경엔 정책 이상의 것이 있다고 보는 시선도 생긴다.
문제는 이 모든 움직임이 문서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환율조작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의심이 반복되면 결국 누군가는 그것을 ‘국가 개입’으로 규정하려 든다.
반응이 지나쳤다고 느껴지면 의도가 의심받는다
어떤 조치든 결과가 지나치면 의도도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무역의 흐름이 급격히 기울고 특정 국가만 이득을 본다는 인식이 퍼지면 단순한 경제 전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조치가 특정 시점에 집중되었거나 같은 방향으로 반복되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시장 반응이 아니라면 누가 손을 댄 것인지 찾아보려는 시도는 자연스럽다.
직접적인 개입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그 움직임이 경쟁 상대를 명확히 불리하게 만들었다면 의심은 가라앉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판단의 문제가 된다.
의도가 아니라 결과를 중심으로 법적 논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나라가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에 나설 근거를 찾는 과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국제법은 완벽한 증거보다 반복성과 영향력에 더 주목한다.
아무리 정교하게 감췄더라도 그 흐름이 특정 국가의 이익만을 향하고 있었다면 더 이상 그 조치는 경제정책으로만 머물지 못한다.
국가 책임을 묻는 기준은 ‘행위’보다 ‘영향’에 있다
국제법은 실제로 어떤 의도를 가졌느냐보다는 그 행위로 인해 어떤 결과가 발생했느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환율조작 논란도 마찬가지다.
자국 화폐가 급격히 절하된 상황이 반복되고 그로 인해 특정 수출 품목이 급증하거나 상대국 산업이 명백한 피해를 입었다면 그건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국제법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특히 해당 조치가 다른 협정이나 조약을 통해 이미 금지되어 있거나 사전에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이어졌다면 그 국가는 의무 불이행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환율조작을 직접 다룰 수 있는 명확한 재판 구조가 없다는 점이다.
IMF는 통화정책 감독 기능을 갖고 있지만 강제력이 약하고 WTO는 통화 문제에 대한 명시적 관할권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결국 책임을 묻는 방식은 ‘정치적 외교 압박’으로 옮겨간다.
기준이 있어도 모두가 그 기준을 따르지는 않는다
환율이 왜 움직였는지 따지는 일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다.
경제 상황, 정치 배경, 정책 방향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선을 긋는 데 늘 조심스럽다.
어떤 나라에선 경기 부양이 주된 이유였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나라에선 수출입 균형을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달라질수록 법은 조용해지고 해석은 길어진다.
그렇다 보니 똑같은 환율 개입도 어떤 경우엔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다른 경우엔 불공정 행위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해석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환율의 수치만으로는 누가 잘못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수치가 나오기까지의 선택들 그리고 그 선택이 다른 나라에 어떤 충격을 줬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법은 결과보다 맥락을 먼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