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의 국제법 적 책임은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일이 있다.
거대한 회사가 문제를 일으켜도 어디서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아무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회사는 존재하는데 책임은 흩어져 있다.
국제법은 이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사람들은 묻고 있지만 법은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대 기업이 법의 바깥에 있는 듯 보이는 이유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기업이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말하는데 회사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누구의 책임인지 묻기도 전에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 수 없게 된다.
다국적 기업은 한 나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본사는 A국에 있지만 공장은 B국에 있고 고객은 전 세계에 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나라 법’을 기준으로 따져야 하는지부터 혼란이 시작된다.
그 구조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우리는 하청업체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우리는 모회사일 뿐 현장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말을 돌리다 보면 정작 피해자는 어디에서도 책임을 묻지 못한 채 남겨진다.
누군가는 묻는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면 그에 맞는 책임도 함께 커져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규모가 커질수록 책임은 작아지고 위치가 흩어질수록 책임은 흐려진다.
법이 있지만 닿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
기업이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그걸 막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규칙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이 닿지 않는다.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건 분명한데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업이 한 행동이 명백한 위법이지만 본사가 있는 곳에서는 그런 행위가 법으로 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현지 법으로만 처벌하려 하면 이미 빠져나간 문이다.
게다가 구조가 복잡하다.
지사는 이쪽, 책임자는 저쪽, 계약은 다른 쪽에 되어 있다.
한 명의 피해자가 어디에 신고해야 할지도 모르고 누가 처리할 책임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너무 나뉘어 있어서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책임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고 그 틈 사이에서 사람은 계속 다치고 있다.
기업의 ‘책임 회피 기술’은 이미 체계적이다
몇몇 다국적 기업은 법망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일종의 전략처럼 작동하는 구조다.
하청 계약을 활용하거나 자회사를 여러 층으로 두는 방식 또는 이름만 다른 관계사로 위험 요소를 분산시키는 방식도 있다.
이런 방식은 마치 게임처럼 보일 수 있다.
‘책임’이라는 구역을 피해 다니며 아무리 문제가 생겨도 회사 중심부는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그 중심에서 결정은 내리지만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밖으로 흘러간다.
일하는 사람은 있어도 고용한 주체는 없다고 말하는 구조.
물건을 생산해도 누가 생산했는지를 모른다고 말하는 계약.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는 법을 따르고 있다’는 말속에 감춰진다.
문제는 바로 그 ‘따르고 있다’는 말이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법이 닿지 않는 위치를 찾아 움직인 결과라는 점이다.
누가 보더라도 불공정해 보이지만 법으로 단속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구조가 너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책임인지 묻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무언가 잘못됐을 때 사람들은 대개 책임자를 찾는다.
그런데 지금의 구조는 그걸 찾지 못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이름은 하나지만 그 안에는 수십 개의 회사가 얽혀 있고 계약서는 서로의 책임을 줄이려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예전엔 법이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정보가 더 중요해졌다.
누가 무엇을 결정했고 그 결과가 어디에 닿았는지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해낼 수 없다면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몇몇 국가는 이제 그런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어디서든 책임지게 만들려는 법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에 가깝다.
대부분의 나라는 그 틀 밖에 있다.
책임이란 단어는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구조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특히 그 구조가 복잡할수록 책임은 흐려지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어디에도 묻지 못한 고통’만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