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상 분쟁 중에도 의료 시설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
한 분쟁 지역에서 구호 병원이 폭격을 맞았다.
병원 지붕 위에는 ‘적십자 마크’가 분명히 표시돼 있었고 건물 안에는 어린이 환자와 간호사, 수술을 집도 중인 외과의가 있었다.
해당 공격으로 여러 명이 사망했고 가해 측은 “군사 거점으로 오인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후 위성사진과 구조팀의 보고서에서 병원이 민간 구조였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처럼 전쟁 상황에서도 의료시설과 의료 인력은 특별한 보호 대상이라는 원칙은 종종 현장에서 무시되거나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문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전투가 격해질수록 어떤 보호 대상이었던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구조 자체에 있다.
의료시설 보호는 선택이 아니라 전쟁 규칙에 포함된 항목
현대전에서는 군사 시설과 민간 구호시설의 구분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무장단체가 민간 지역에 섞여 활동하거나 병원 근처에 군사 장비를 배치하는 경우 혼동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실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은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제네바 제1·4 협약과 추가의정서에서는 의료시설, 구호기관, 의료 수송수단 등에 대한 공격을 명백한 금지행위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병원이 임시 시설이라 할지라도 적절한 표식과 통보 절차만 갖췄다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즉, 전투 상황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실제 사례에서 보호 원칙이 무너졌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가
과거 중동 분쟁 지역에서 구호 병원이 공격받은 일이 있었다.
현지 의료진은 몇 주 전부터 위치와 표식을 사전에 통보했지만 공습은 새벽 시간에 단번에 병동 전체를 파괴했다.
해당 병원에는 신생아 중환자실과 수술실이 운영 중이었고 피해자 중 상당수는 치료 중인 환자들이었다.
공격을 감행한 측은 군사 정보에 따라 병원이 적군의 은신처로 전환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현장을 확인한 국제 구호팀은 무장 인원, 장비, 방어 구조물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판단 실수가 아니었다.
이미 등록된 보호 시설이라는 전제가 무시되었고 그 결과로 민간 의료 인프라 전체가 마비되었다.
남겨진 의료진은 환자 이송 중에도 반복된 공습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고 해당 지역의 수술·응급치료 기능은 수개월 동안 복구되지 못했다.
병원을 병기로 오해하는 순간 민간인 보호 원칙은 무너진다
일부 군사 작전에서는 의료시설 내부에 숨어 있는 적을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위험 지역으로 판단하고 작전을 강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은 민간인과 구호대상을 ‘전투행위의 일부’로 간주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보호 원칙 자체를 흔든다.
실제로 시리아 내전 당시 의료시설이 연쇄적으로 공격당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수년간 지역 내 공공의료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전투원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임산부와 아동, 만성질환 환자, 구호단체 직원 모두가 치료받을 공간 자체를 잃게 된 것이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면 의료시설은 더 이상 ‘중립 공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의료진 역시 전투에 연루된 존재로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국제법은 시설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보호한다
현장에 있던 구호 요원은 군사작전 종료 직후 병원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환자를 수습하면서 말했다.
“이곳은 총이 아닌 청진기가 있어야 할 자리였는데 지금은 탄약 냄새만 남아 있다.”
의료시설은 단지 벽과 침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환자, 간호사, 수술팀, 후송 인력 등 모두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제네바 협약은 시설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시설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인력을 적대행위로부터 배제된 존재로 인정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그 구분이 종종 모호해진다.
일부 병원은 군사작전 중 전술적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사전 조사 없이 ‘잠재적 위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서 국제법은 형식보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역할과 의도를 기준으로 보호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
전투가 끝난 뒤 병원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법의 조항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왜 보호가 필요했는가”를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