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결혼과 국제 이혼, 국제법은 누구의 편일까?
사랑은 국경을 넘지만 이혼은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법의 배경에서 시작된 관계는 끝나는 순간에도 모든 것을 분리해내지 못한다.
결혼 당시엔 낭만이 기준이었고 이혼을 앞두고는 서류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한쪽은 묻는다.
“도대체 우리는 어느 나라 법으로 헤어지는 거지?”
이 글은 국제결혼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법이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감정과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다룬다.

서류는 처음엔 의미 없어 보였지만 나중엔 전부였다
처음엔 장소만 정하면 될 줄 알았다.
결혼신고는 어디서 할지 아이가 생기면 어디에서 태어나게 할지.
그런 결정들이 사랑의 일부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모든 게 흐려졌을 때 사람들은 다시 그 서류를 꺼낸다.
거기엔 어느 나라 법 아래서 맺어졌는지가 나와 있었다.
누가 책임지는지 어느 법정이 먼저 개입할 수 있는지를 그 종이가 말해주었다.
결국 감정은 흐려지지만 문서에 남은 글자는 흐려지지 않았다.
이제는 같은 사건인데 다른 법으로 읽힌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알고 있었고 같은 결혼 생활을 했지만
다른 나라의 법을 가진 두 사람이 된 상태였다.
그중 하나는 먼저 변호사를 찾았고 다른 하나는 그걸 이메일로 통보받았다.
서로 말이 통했지만 이제는 ‘누구 법으로 말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소송을 어디에 먼저 제기했는지가 흐름을 바꿨다.
그러자 각자의 국적과 거주지가 각기 다른 법정에서 다른 기준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하나의 결혼이 두 개의 절차로 나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거처를 정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적법성’
양육권 분쟁은 가장 감정적인 순간이지만 그걸 판결하는 법은 가장 차가운 기준을 사용한다.
어디에서 아이가 오래 거주했는가, 학교는 어디에 다니고 있었는가, 누가 더 적합한 보호자인가.
이 질문들은 사랑의 깊이가 아니라 정착성과 안정성을 판단한다.
그리고 이 기준은 문화마다 다르다.
한 나라는 모친 중심, 다른 나라는 공동 양육 선호.
그 차이 사이에서 국제법은 명확한 해답 대신 가능한 최소한의 조율만을 제안할 뿐이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나라에 따라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게 정리됐다고 느꼈던 순간 상대가 다른 나라 법원에서 다시 서류를 보냈다.
같은 결혼이었다.
그런데 어떤 법에서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서류가 등록된 나라가 다르고 그 나라 법은 ‘절차가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둘이서 결정했지만 이혼은 셋 이상이 개입했다.
부부 그리고 나라.
그래서 어떤 이혼은 끝나지 않은 채 다른 나라에서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