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분쟁에서 국제법이 기준이 되는 이유
땅은 경계가 보이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다.
육지에서는 담장을 넘으면 분쟁이지만 바다에서는 그 담장조차 흐릿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분쟁이 생긴다.
섬 하나를 두고 세 나라는 제각각 소유권을 주장하고, 어획량을 두고는 해경선박이 맞부딪힌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질문에 다시 돌아온다.
"어디까지가 누구의 바다인가?"
바로 그때 국제법이 등장한다.
감정이 앞선 외교 전을 대신해 문장과 조문, 판례로 해답을 제시하려는 시도.
그것이 왜 해양 분쟁에서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게 만든 법의 구조가 여기에 숨어 있다.

바다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뉘지만, 법은 그것을 ‘기록’한다
지도에는 그어져 있지 않다.
바다엔 경계석도 국경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자신의 해역을 주장한다.
그 주장에는 반드시 근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거는 대부분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담겨 있다.
어디까지가 영해인지, 그 바깥이 배타적 경제수역인지, 대륙붕까지 주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하나의 숫자와 기준으로 정해져야만 분쟁이 ‘대화’로 전환된다.
법은 말장난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그래서 어느 쪽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 논리로 따져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법은 바다를 나누지 않는다. 다만, 바다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구조가 없다면 나라마다 “이 바다는 내 것”이라 외치며 무력만이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외교보다 먼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기준선
해양 분쟁은 종종 감정에서 시작된다.
고기잡이 배 한 척이 상대국의 경비정에 억류됐다는 뉴스가 나오면 정치권은 빠르게 반응하고 외교부는 항의문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 항의가 유효하기 위해선 먼저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선이 모호하다면 어느 누구도 제대로 항의할 수 없다.
오히려 잘못된 경계에서의 억류는 정당한 조치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국제법은 바다 위의 ‘보이지 않는 지도’를 그리는 도구가 된다.
협약, 판례, 양자 조약 등을 통해 국경선을 법적 언어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결국 외교는 법 위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해양 분쟁이 발생할 때 국제법이 기준이 되는 이유는 국가 간 대화의 구조를 성립시키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분쟁을 해결하는 건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선’이다.
무언가를 막기보다는, 서로를 알아듣게 만드는 방식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만나면 처음엔 손짓 발짓으로 대화한다.
해양 분쟁도 그와 비슷했다. 각국은 바다에 자국 깃발을 꽂고 먼저 선을 긋는다.
거기엔 감정도 있고 전략도 있고 오래된 역사도 있다.
그런데 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국경이 있다는 표시도 없다. 결국 누군가는 ‘지금 여긴 어디쯤인가’를 정리해줘야 했다.
그걸 법이 대신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축적된 해석들, 불완전한 조약 문장들, 판례에서의 문단 하나하나가 그런 기준이 되었다.
이 기준은 전쟁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분쟁을 설명하게 만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누가 과했는지, 어느 주장이 억지인지.
그걸 판단하려면 먼저 서로가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구조는 여전히 작동한다.
강제로 따르게 만들지 않아도 그 기준 없이는 자기 입장조차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실의 분쟁이 법의 기준을 시험하기 시작했을 때
요즘은 단순히 바다를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심해 광물, 해저 통신망, 해양 생태계 보호까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리고 이런 갈등이 생길 때마다 다시 국제법이 호출된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법의 해석에 똑같이 동의하는 건 아니다.
똑같은 조문을 읽고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기준’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모두가 그 조문을 인용한다. 버리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든다.
해양 분쟁이 국제법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그 법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그 법이 유일하게 공통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기더라도 모두가 그 법을 참고한다. 그 자체로 기준은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