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민간인 피해, 국제법은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나
전쟁이 시작되면 언제나 먼저 무너지는 건 사람의 삶이다.
총소리는 전투에서 울리지만, 피해는 주방, 거실, 마당에서 시작된다.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 날 아주 짧은 영상 클립 때문이었다.
어린아이가 부서진 벽 사이에서 인형을 껴안고 있었고, 그 아래 자막에는 ‘민간인 피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 말이 어쩐지 가볍게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였다. 법이라는 것이 과연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까, 묻게 된 건.
규칙은 존재하지만, 현실은 늘 한 박자 늦는다
전쟁에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어떤 무기를 써야 하고, 어디를 공격해선 안 되며, 누구를 절대 다치게 해선 안 되는지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원칙을 듣고도 여전히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왜 민간인 피해는 계속되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을 안고 여러 기록을 찾아봤다.
정확한 장소는 없지만, 많은 사례에서 일정한 공통점이 있었다.
규범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 규범이 ‘작동하는 시간’과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었다.
어떤 보호도,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무 준비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가게 문을 닫고 돌아가던 길에 폭격을 맞았고, 어떤 이는 약을 사러 나갔다가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돌아온 건 단 한 장의 문서였다.
그 문서에는 ‘이 지역은 비무장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장면들을 보며, 나는 법이 없는 게 아니라,
법이 너무 늦게 도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늦음은 종종,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만든다.
목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남긴 여운
피해를 입은 사람 중 일부는 말한다.
"아무도 몰랐던 게 더 무서웠다"라고.
전쟁은 고립된 공간에서 일어나지만, 그 안의 고통은 가려지지 않는다.
요즘은 누군가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 하나가 그 참혹함을 바깥으로 전한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다른 누군가가 법을 꺼낸다.
‘이건 규범 위반이다’, ‘기록해 두자’, ‘증거로 남기자’.
어떤 사건은 바로 잊히고, 어떤 영상은 수천만 회 공유된다.
그런 선택의 차이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지만, 그 흔적들이 쌓이면서 법은 조금씩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작동은 아주 조용하다.
몇 개월 뒤, 어떤 단체가 보고서를 내고, 어떤 법률가가 분석을 한다.
그 안엔 그날의 피해와 상황이 기록되어 있고, 몇 줄짜리 요약이 그 모든 무게를 감싸 안는다.
나는 그 구조가 안타깝고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피해를 막지 못한 법이, 적어도 기억하게는 만든다는 것.
그 기억이 언젠가는 책임을 묻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
그래서 어떤 피해자들은 묻는다.
"왜 지금은 나를 도와주지 않냐"라고.
그리고 어떤 법률가는 대답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지워지게 두지는 않겠다"라고.
그 말의 무게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말은 지금도 기록되고 있었다.
말뿐인 보호가 아닌, 살아 있는 행동이 되려면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건 언제나 장면이다.
전쟁 뉴스에 나오는 숫자도, 협정의 조항도 다 흘러가지만,
한 아이가 울고 있던 길모퉁이의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마음속에 드는 질문은 하나였다.
‘우리는 정말 보호하고 있는가?’
법은 많은 말을 한다.
누구를 지켜야 하고, 어떤 시설은 공격해선 안 되며,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은 금지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호라는 말이, 실제로 그 사람들에게 도달했는지 여부는 그다지 자주 이야기되지 않는다.
어떤 분쟁 속에서는 구조대가 들어갈 길조차 확보되지 않았고,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날 아침, 건물 자체가 사라졌다.
그들이 보호받아야 했다는 말은, 오히려 일이 끝난 뒤에야 등장했다.
나는 그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
법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서류 속 조항에만 존재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법은 어떤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까.
진짜 보호란, 누군가가 실제로 ‘그 현장에 도달했을 때’ 시작된다.
말이나 선언보다 먼저, 도착하는 손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위험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피해를 막기 위해 결정을 내리는 순간, 비로소 그 법은 현실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전쟁 속 민간인을 보호한다는 건 감시와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다.
보호는 기록 이전에 행동이어야 하고, 보고서 이전에 선택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 너무 많은 무력함을 쌓아왔고, 이제는 말보다는 움직이는 윤리가 필요한 때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법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무력함 속에서도, 누군가는 그 법을 붙잡고 버틴다.
전쟁 속 민간인을 지키는 건 결국, 그들을 바라보며 끝까지 말하는 것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