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법

아동 병합 전쟁 범죄, ICC는 국제법으로 어떻게 다뤄왔나?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선다.
그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일부가 아니라 현실 속 전쟁에서 반복돼 온 장면이다.
분쟁 상황에서 아동을 무력 충돌에 동원하는 일은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금지해 온 중대한 범죄다.
그러나 그 범죄를 실제로 처벌하고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아동 병합 문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범죄화 의사를 밝혀왔지만
그 선언이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기까지는 여러 벽이 존재했다.
어떤 행위가 전쟁 범죄로 인정되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은 더욱 복잡했다.
이 글에서는 ICC가 아동 병합이라는 전쟁 범죄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접근해 왔는지 그리고 실제 사례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ICC가 국제법에 따라 처벌하는 아동 병합 전쟁 범죄

 

전쟁에서 아동을 병합하는 행위는 어디까지가 범죄인가

무력 충돌에서 15세 미만 아동을 징집하거나 전투에 직접 참여시키는 행위는《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Article 8)》에 따라 명시적인 전쟁 범죄로 규정된다.
다만 그 판단은 단순히 나이나 참여 여부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실제 분쟁 지역에서는 아동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아니면 협박이나 생존의 대가로 끌려갔는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전투 참여’의 범위 역시 단순 무장 활동을 넘어 정찰, 보급, 경계 임무 등을 포함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ICC는 아동 병합 범죄를 다룰 때 그 행위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조직적 패턴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중시한다.
이 기준은 범죄의 고의성, 계획성, 지휘명령 체계와 연결되며 개인의 책임뿐 아니라 집단적 구조 속 책임까지도 아우르기 위해 적용된다.
단순한 징집 행위 이상의 맥락을 살펴야만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범죄는 ‘입증’에 있어 많은 제약을 동반한다.

 

ICC 첫 유죄 판결은 왜 상징성이 컸는가

국제형사재판소가 아동 병합 전쟁범죄에 대해 처음 유죄를 선고한 것은 2012년 콩고민주공화국의 무장단체 지휘관 토마스 루반가(Thomas Lubanga) 사건이었다.
루반가는 무장단체 리더로서 2002~2003년 동안 아동병사를 조직적으로 징집하고 15세 미만 아동을 전투에 직접 동원한 혐의를 받았다.
ICC는 그의 범죄를 전쟁범죄로 인정하고 14년형을 선고했다.
이는 ICC 설립 이후 첫 유죄 판결이자 아동 병합 범죄를 전면에 내세운 첫 번째 공식 사례였다.

그러나 이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유죄 여부를 넘어서 ICC가 아동 보호를 국제형사법의 핵심 사안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루반가의 사건은 법적 기준을 마련했다기보다는 기존 규범이 실제 적용 가능한 구조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그 이후로도 ICC는 여러 아프리카 무장단체 지도자들에게 같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거나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소율과 실질적 처벌의 간극은 존재하며 법적 선언이 현실로 이어지는 데에는 많은 장벽이 남아 있다.

 

첫 사례 이후, ICC는 얼마나 실질적으로 대응했나

루반가 사건 이후 ICC는 아동 병합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평가되지만 실제 기소 건수나 처벌 성과를 보면 현실은 복잡하다.
대표적으로 우간다 반군 LRA의 지도자 조지프 코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셀레카 및 안티발라카 민병대 지도자들이 ICC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정치적 복잡성, 피의자의 소재 불명, 국가 협조 부족 등의 이유로 형사재판까지 이어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특히 아동 병합 범죄는 입증 자체가 어렵고 피해 아동의 진술이 정신적 외상으로 인해 단절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가해 지휘관들이 현장 책임을 부인하거나 자발적 참여라는 주장으로 방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ICC는 더 많은 기소를 시도하고 있지만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반복된다.
이로 인해 ICC가 아동 병합 범죄에 대해 실질적 억지력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일부 비판도 존재한다.

 

형벌만이 아니라 회복도 포함돼야 한다는 시각

아동 병합 범죄를 다루는 데 있어 ICC는 단지 처벌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피해를 입은 아동들이 향후 삶에서 겪게 될 심리적·사회적 후유증에 대한 회복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실제로 루반가 사건 이후 ICC는 피해자 권리 보장의 일환으로 징집된 아동들의 재활과 교육, 사회 복귀를 위한 복합적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법적 정의가 내려졌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들은 분쟁의 직접적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며 그 피해는 단지 물리적 폭력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강제 동원의 기억, 정체성 혼란, 지역사회 복귀 시 낙인 문제 등은 형벌 그 자체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없는 후속 문제들이다.

그렇기에 ICC는 단지 처벌만을 넘어서 피해 아동의 회복과 공동체의 재통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수용하고 있다.
국제형사법이 기능하려면 그 기능이 단지 응징이 아닌 회복으로 확장돼야 한다는 흐름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